1986년 1월 6일, 그날 서울의 기온은 영하 16.9°였다. 나는 버스 노선을 몰라 아홉 살 막내아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논현동 영동시장에서 이수교, 현충문을 지나 노량진을 거쳐 보라매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지 몇 해 지났지만 서울은 낯설고 막막한 도시였다. 그날의 견딜 수 없던 추위는 내 생애 일생일대의 기억조차 끔찍한 생사의 싸움이었다. 길이 그렇게 멀고 힘든 줄도 모르고 아이가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되기보다는 그날 약을 처방받지 않으면 먹일 약이 없다는 사실로 다급했다. 몸으로 부딪혀 오는 바람의 느낌을 오토바이를 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체감온도란 바람의 세기다. 물체의 속도는 바람의 세기와 비례한다. 그날 내게 부딪혀 오던 체감온도는 영하 30°는 족히 되었으리라. 주머니 속의 귤이 돌덩이가 돼 버리던 영하 20°의 태백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타고 갔던 그날의 심적 고통은 표현할 길이 없다.
서울대 부설 보라매병원 신경과 의사 선생은 매주 한 번씩 뇌파검사 결과에 따라 아침저녁 알약 두 개를 7일분만 처방했다. 약을 먹이는 중에도 감기만 걸리면 막내는 어김없이 발작을 했다. 감기는 어찌 그리 자주 걸리던지 그때마다 열을 동반하고 체열이 38.5°를 넘어서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발작을 일으켰다. 흔히 말하는 간질이 분명한데도 나는 열성경기熱性驚氣라 고집하며 생각조차 끔찍한 그 굴레를 거부했다. 막연하긴 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나을 날이 올 거라 믿어야 했다. 내장기관이 아닌 의식의 중추인 뇌파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다만 뇌신경을 억제하는 약물이기에 이 약에 대한 인식은 달리해야 했다. 지속적인 약물투여가 특히 관건이라 믿었다. 아이에게는 단 한 번이라도 약을 빼먹지 말라고 누누이 다그쳤다. 어린 나이에도 약 먹기를 거부하지 않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것은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후에도 약을 받기 위해 하루 13시간을 기차를 타고 오갔던 아빠의 수고를 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몇 번이나 오갔던가. 담당 의사는 뒤늦게 서울 보라매병원 신경과 의사 선생의 이름을 적어주며 찾아가 보라고 했다.
1977년 2월 대구시 종로의 D산부인과에서 태어난 막내는 4.2kg에다 머리가 유난히 커서 자연분만을 시도한 자체가 잘못이었다. 세 번째 출산이니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한 의사도 착각이었던 게 하마터면 아이도 산모도 잃을 번한 위험한 사건이었다. 질구를 칼로 자르고도 빠지질 않아 흡입분만기로 아기의 머리를 잡고 억지로 끌어당겨 빼 내는 과정에서 아기의 머리는 뒤틀리고 산모는 2주간 퇴원을 못했다. 항문도 찢어지고 장기까지 밀려나와 비뇨기과에서 장기를 되돌리고 찢어진 괄약근도 봉합하고서 한 달을 꼬박 옆으로 누워 더 입원해야 했다. 오히려 항문주변 후유증이 훨씬 심했다. 퇴원하고서도 6개월 동안 집 안 일은 커녕 한 걸음 걷기도 힘들어 누워 지냈다. 대체 복부를 열고 꺼냈으면 무슨 문제인가. 산부인과 의사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겉으로 멀쩡하던 아기는 첫 돌이 다가올 무렵부터 경기를 했다. 체온이 38.5°를 넘기면 어김없었다. 심할 때는 하루에 여섯 번이나 했다. 눈동자는 간곳없고 흰자위만 내놓고 먹은 것을 토해내고 온몸을 비틀어대며 사지가 굳어지던 거였다. 5, 6초간 때론 7초 이상 숨을 들이키기만 할 뿐 내쉬기를 멈추던 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박하게 했다. 아기의 숨이 그대로 멎을 것만 같았다. 새벽이면 아기를 안고 골목길을 뜀박질을 해 몇 백 미터를 달려 큰 길로 나가 택시를 탔지만 가까운 의원은 문이 닫혀 갈 곳도 없었다. 한번은 택시운전기사가 데려다 준 침술사에게 아기를 맡겨 머리 몇 군데와 15센티 가까운 장침을 복부에다 찌르고 나서야 깨어났다. 눈동자가 돌아오고 숨을 회복한 아기는 탈진을 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날 택시 운전기사가 알려 준 대구시 성당동 개인주택 할머니 침술사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가까운 의원에서는 해열주사만 한 대 놓을 뿐 아기가 깨어나는데 결정적 역할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맡기면 그때마다 깨어났기에 경기가 일어날 때마다 할머니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새벽잠을 깨워도 귀찮은 기색 없이 몇 년 동안 웃는 낯빛으로 할머니는 우리들의 구세주가 돼 주셨다. 발작은 회복되긴 했어도 그럴 때마다 대체 뇌신경이 얼마나 망가질까 그게 안타까웠다.
막내는 어릴 때부터 야뇨증도 겸했다.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오줌을 쌌다.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키와 몸무게가 늘어나 소변의 양도 엄청났다. 겨울이 문제였다. 밤마다 두꺼운 요를 적시는 통에 빨래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요가 얼어붙어 며칠이고 마르지 않았다. 거기에다 질퍽한 오줌위에서 몇 시간이고 뒤척이다 잠이 깬 아이는 급기야 피부에서 붉은 발진마저 돋아났다. 강남구 논현동 185번지 단칸방 그 시절엔 빨래 널 곳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을 끝으로 드디어 뇌파검사에서 정상 판정이 내려졌다. 내 믿음이 적중하기까지 병원 약을 복용한 지 13년 만이었다. 더 나빠지지 않아야 성장과 더불어 호전될 거라는 기대는 옳았다. 무엇보다 시기를 놓치고 나면 회복되기 힘들 거라 판단하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따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6개월 간 약은 계속 복용하면서 뇌파검사를 지켜보다 약 처방도 중단되었다. 선생님은 오히려 지시를 잘 따라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복잡한 구조의 뇌파를 분석하고 처방약을 달리 해 주신 보라매병원 신경과 박성호 선생님에게 엎드려 감사드렸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K대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군복무도 마쳤다.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와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외국기업 한국본사에 입사했다. 결혼도 했다. 신장 180센티, 몸무게 87kg으로 결혼 3년차에 자기를 속 빼 닮은 튼실한 손녀를 안겨주기까지 22년 동안 단 한 번의 병발도 없이 잘 살아간다.
오늘은 2013년 1월 3일, 서울의 일기예보는 영하 16.4°, 26년 만에 찾아온 혹한이라며 법석이다. 아홉 살 막내를 등 뒤에 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갔던 26년 전 그날의 참혹했던 하루가 주마등처럼 되살아난다. 내게 맡겨진 작은 불씨 하나 지켜야 했던 것은 내가 불어넣은 생명에 대한 책임이었다. 이제는 서른일곱 살로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며 건실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 하나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