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초반이던 1974년 1종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오토바이를 샀다. 처음 출시되었던 스즈끼 125cc 오토바이는 발로 밟아서 시동을 걸 수 있었지만 당시는 흔치 않은 교통수단이었다.
대구에서 하양을 거쳐 경북 내륙 지방도를 달릴 때였다. 왕복 1차선 도로에는 육중한 5톤 트럭이 느릿느릿 내 앞 길을 막고 있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화물차가 가로막고 어기적대면 추월을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보면 자동차와는 사뭇 다르다. 단 1분을 참아내기도 어렵다. 더구나 혈기왕성한 청춘이 아니던가.
운전을 하다보면 모퉁이를 돌거나 오르막이거나 대형차량에 가려 반대차선에서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은 부지기수다. 도로상태 차량속도에 따라 사고를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능력을 쌓기까지는 반드시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자가운전을 꾸준히 10만 km 쯤 하고보면 충분치는 않지만 대체로 감을 잡게 된다. 그때부터 전방 3대 건너 차량의 브레이크 등을 살피고 방어운전도, 대화를 하면서 전방과 사이드 및 후방에다 시력을 분산할 줄도 알게 된다. 문제는 핸들을 잡기 시작하여 겨우 5만km 정도의 2, 3년차 유경험자다. 자만에 빠지기 쉬운 가장 위험한 시기다.
나 역시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하여 딱 그런 시기의 삼십대 중반이었다. 참을성도 부족했고 자만심만 부풀어 화물차를 추월 무작정 중앙선을 침범하고 말았다. 오토바이의 순간가속은 자동차와 다르다. 화물차 꽁무니를 벗어난 순간 눈앞에 2.5톤 트럭을 발견하고 죽었구나 싶었다. 마치 일부러 달려오는 차 앞으로 뛰어 들어간 꼴이었다. 상대 트럭의 속도도 만만찮았다. 운동자율신경은 의식과 상관없이 브레이크를 밟음과 동시에 0.01초의 간극을 비집고 핸들을 꺾어 진행방향 화물차 꽁무니를 아슬아슬 파고들었다. 섬광이 스치듯 바람을 몰고 화물차는 지나갔고, 저만치서 끼익~~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팔을 뻗고 고함을 내 지르며 달려왔다. 뒤돌아보던 나는 붙잡히면 맞아 죽을 것만 같아 얼른 도망쳐 달아나기 바빴다.
오토바이 사고의 위험성은 맨몸으로 부딪히는데 있다. 승용차와 충돌은 몇 미터 공중재비를 하고나서 차량에 부딪힌 충격에다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이 더하여 대체로 큰 부상을 입기 마련이다. 때문에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 그러나 마주 오는 화물차량과 정면충돌인 경우 시속 30km 정도라도 오토바이 운전자는 살아나기 어렵다.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면 미숙했던 내 젊은 날, 순간의 판단 착오는 곧 죽음이란 사실을 평생을 두고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오토바이 당시 순간가속은 시속 70km를 웃돌고 있었다. 사건은 계속되었다. 같은 배기량의 동호회에 가담해 줄지어 진해 벚꽃 놀이를 다녀오던 중에 한 동료는 트레일러 밑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즉사하는 걸 보았고 한 친구도 나중에 다른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것은 두 바퀴로 시속 100km이상 속력을 내다보니 사고가 나면 반드시 전복되고 충격은 몸으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그 많은 경험을 몸으로 부딪치고 보면 골절사고는 비일비재다. 커브길이 특히 위험하다. 도로 갓길로 다니기 십상이라 커브길 가장자리는 모래가 깔린 곳이 많다. 2cm 언저리의 모래가 살짝 깔린 아스팔트길은 오토바이에게 빙판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김없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곡선의 각도와 속도가 비례하지 않으면 길 밖으로 벗어나기 일쑤다.
오토바이 브레이크는 처음부터 오른발과 오른손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왼손은 기어를 작동하고 오른 손은 가속 엑셀레이터와 앞 브레이크, 오른발은 중립 및 4단까지의 기어 변속과 아울러 뒷바퀴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어름판 위에서도 직진방향 시속 30km 미만에서 손과 발 동시에 브레이크를 작동하면 두 바퀴로도 전복되지 않고 그대로 밀려간다. 대부분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발 하나에 의지하기 십상이라 넘어진다. 뒷바퀴만의 브레이크는 약간의 곡선에도 전복될 확률이 높다. 타이어 상태가 양호한 경우 빙판 위에서도 사륜구동 자동차는 시속 50km 미만의 직선코스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바퀴가 돌아가지 않는 이유와 상통한다. 스노우타이어가 아닌 경우 눈길에서 타이어 상태가 아무리 양호해도 시속 50km를 초과하게 되면 사륜구동 자동차도 브레이크가 소용없다.
내가 오토바이 운전 중 하체 골절상을 입은 사건은 지하철 공사구간 철판이 깔린 곳에서다. 100kg의 상자를 싣고 아스팔트길에서 지하철 공사구간 3cm 정도 돌출된 철판을 오르다 미끄러졌다. 평소 잘 통과되던 요철구간 45° 비스듬한 각을 그날은 비가 와서 통과하지 못하고 미끄러진 것이다. 오토바이에 다리가 깔려 골절상을 입고 완전히 회복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세월이 지난 뒤였다. 3mm 두께 판유리 90☓150cm 10장의 무게는 100kg에 가깝다. 바람 불던 날 아스팔트 도로변에서 유리를 오토바이에 싣고 달리다 전복되었을 때도 오토바이를 버리고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 탓이다. 바지와 팔꿈치 옷에 구멍이 났지만 잘 굴러서 찰과상만 입었다. 부서진 유리는 면도날이나 진배없다. 어느 성질 급한 사람이 유리문을 발길질 했다가 인대와 정맥이 절단되어 6개월을 입원하고서도 절름발이가 된 일이 있다.
참을성 없는 성격의 소유자는 오토바이 운전을 피해야 한다. 설령 3년 이상의 경험을 쌓았다 해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오토바이 그 매력에 흥건히 젖고 보면 마약에 빠진 사람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다. 카레이서가 시속 300km를 달리는 기분이 어찌 오토바이 150km와 맞먹으랴.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전해지는 동력은 작은 몸짓으로도 몸으로 부딪쳐오는 거창한 울림은 도무지 체험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더러는 골절사고를 열세 번을 당하고도 버리지 못하는 게 오토바이의 마력이다. 그런 사람에게 오토바이는 죽음과 맞바꾼다 해도 두렵지 않은 애물단지다.
죽을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10년 이상 나의 수족이었다. 자동차로 갈아탄 지도 20년이 넘었다. 하도 아쉬워 50cc 소형 오토바이를 1년 정도 곁에 두기도 했었지만 그도 내 보내고 스스로 핸들을 잡아 본 지 까마득하다.
할리데이비슨 그 우렁찬 애마를 몰고 달려보고 싶다. 할리의 매력은 속도가 아니라 두 개의 엔진에서 뿜어내는 소리의 떨림이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우렁찬 힘은 올라보지 않으면 모른다. 낙엽 흩날리는 인재 운두령 고갯길이나, 여름 오대산 월정사 삼나무 숲길, 봄 향기 짙은 매화 흐드러진 섬진강 고갯길을 굉음을 날리며 칠순이 지난 지금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신나게 달리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치밀어 오르는 젊음의 상징, 느껴보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짜릿한 그 상쾌함을 어찌하랴.
| 
